붉은 점 하나 어둠을 박살 내고
2024-02-11 00:57 ・ 적적(笛寂)

신년의 아침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다보는 일은 얼마나 황홀하고 아름다운 일인 거냐고 묻는다면

 

헛소리 그만하고 잠이나 퍼질러 자 라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서 쓸 것입니다.

 

정동진입니다. 떠오르는 일출을 본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니 그곳 뿐입니다. 모래사장은 사람들이 게 떼처럼 몰려 있었습니다. 콧물이 발목까지 내려올 만큼 흘렀고 바닷바람은 거세게 불어 눈물을 흐르게 하였습니다. 도무지 이 시간에 왜 태양을 보러 이곳에 온 건지 게다가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잠도 자지 못한 채 해변에 끌려 나온 것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계속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마야인들을 생각했습니다. 태양을 숭배했던 그들을, 이제는 사라진 문명을 그리고 게 떼처럼 바글바글 모여선 해변의 끝에서 갑자기 날씨가 흐려서 태양을 볼 수 없기를 바랐습니다.

 

서로의 얼굴을 더듬어야 알아볼 만큼 어둡던 하늘에서 붉은 점 하나가 찍힙니다.

그 찍힌 점이 번져옵니다. 그리고 번지며 어둠을 달걀을 탁 깨듯이 깨뜨려버립니다. 산산조각이 난 어둠은 어디로 사라진 지도 모릅니다.

 

어제는 어머니 댁에 다녀왔습니다. 다른 때보다 일찍 일어나 동네를 천천히 한 바퀴 돌고 따스한 온수로 샤워를 마친 뒤 역으로 향해 걸어갔습니다. 역사에 도착할 즈음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 위로 붉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다보았습니다.

 

커다란 빈 가방을 어깨에 메고 한가해진 전철을 타고 길고 기나긴 환승역을 지나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고개를 들어 끝을 바라다보며 다시 전철을 갈아타고 어두운 지하의 역들을 지나 지상으로 나와 익숙한 길을 걸었습니다. 며칠 전 여동생과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오빠 내가 진짜 부탁 안 하는 것 알지…. 이번에 올 때 로또 한 장만 사다 줘 안 사 오면….

 

역 근처 로또 판매점이 문을 열기엔 이른 시간인 것 같았지만 게다가 로또를 사본 적도 없어서 약속을 지키지 않을 시 겪게 될 후환을 생각하며 로또 판매점에 문을 여니 이미 많은 사람이 저마다 진지한 표정으로 번호를 체크하고 있었습니다. 로또를 사서 지갑에 넣고 어머니 댁에 도착하였습니다.

 

몸살 기운이 있다는 어머니께서 환히 웃으며 맞아주셨습니다. 어머니 꽃무늬가 화려한 몸빼바지로 갈아입고 여동생과 약속한 로또를 건네주고 소파에 앉았습니다.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한 뒤론 명절 아침은 한가롭기만 합니다.

 

늦은 아침을 먹었습니다. 어머니가 해주신 매운 갈비찜은 유난히 맛있었습니다. 여동생 말로는 유튜브에서 본 레시피를 보고 그대로 만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너무 맛있다며 음식을 씹을 때마다 어머니를 칭찬해드렸습니다.

 

어머니께 세배를 드리고 덕담의 탈을 쓴 기나긴 잔소리를 듣습니다. 머리에 아무 생각도 없이 대답만 잘하는 역할의 저는 한템포 느리고 당연히 내 맘대로 할 것이라는 뉘앙스의 대답을 합니다. 그리고 잔소리의 절정에 다다를 즈음 사랑해요. 엄마라고 낮게 속삭입니다.

 

점심을 먹고 서로 등을 돌리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다 저녁까지 먹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고양이 모란이 신발을 벗기 위해 고개를 숙인 제게 입을 맞추려고 뒷발로 섭니다.

 

도착할 때 쯤 어머니께 전화가 옵니다. 가방 왼쪽과 오른쪽으로 냉장실과 냉동실로 들어갈 음식들을 듣고 있는지를 계속 확인하며 내일 먹을 것과 다음날 먹을 것을 재차 확인하십니다.

 

아무것도 한 일 없이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피곤함으로 눈이 감깁니다.

 

아침이 되고 모란으로 눈이 떠집니다.

 

자 이제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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