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봄이 모든 생이었다
2024-02-17 00:23 ・ 적적(笛寂)

어릴 적 병을 많이 앓아서 병아리라는 말을 듣고 노란 박스 안의 병아리들을 볼 때마다 사 오다가 아침이면 죽어있는 병아리를 엄마 몰래 엄마가 아끼는 화분에 묻어둔 기억이 납니다. 그해 그 병아리 무덤이 된 화초는 유난히 잎이 파랗고 윤기가 나서 화초를 보면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론 알 수 없는 기분으로 화초 끝을 엄마 몰래 꺾어 놓기도 했었죠. 

 

동네 친구 아버지가 병아리감별사 일을 하시는 분이 계셨는데 키우던 병아리를 모두 가져가 성별 여부를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머리를 쓰다듬으셨습니다.

한 마리 한 마리 보시더니 전부 수컷이라고 말씀해주셨는데 건성건성 무관심하게 들여다본다는 것이 너무나 확실해서 동네에서 유일하게 건성으로 인사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였어요.

 

어쩌면 엄마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일 거란 건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 봄이 지나기 전 모든 병아리는 각자의 무덤을 찾아 묻혔습니다. 그리고 이쑤시개에 사인펜으로 각각 다른 색으로 끝을 물들여 화분 안 보이는 곳에 흙 속에 꽂아두었습니다. 가끔 화분 앞에서 무언갈 바라다보며 말을 거는 아들을 엄마는 분명 보았을 것입니다.

동네 아줌마들이 놀러 와서 

 

“이 집 화초 들은 너무 잘 자라는 것 같아”

 

엄마는 힐끗 나를 쳐다보곤 하셨으니까요.

 

병아리는 날개에서 깃털이 나오면 고비를 넘긴 것이라고 합니다. 병아리 날개에 이제 막 돋아난 깃털 같은 햇살이 내리쬐고 있습니다. 

 

손을 뻗어 햇살을 만져봅니다. 

돋아난 깃털로 더 지저분해지고 난폭해질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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