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디난트 암살'-사라예보 사건
2024-02-02 00:50 ・ 최경식

[2] 제1차 세계대전 촉발시킨 기묘한 사건 

'사라예보 사건'. 암살자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페르디난트 황태자와 부인인 조피를 암살하고 있다. 


■사라예보 사건 

합중국론을 둘러싼 어수선한 분위기는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 와중에 역사의 운명을 바꾸는 중요한 일이 발생했다. 페르디난트가 부인인 조피와 함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인 '사라예보'를 방문하기로 한 것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군사 훈련을 참관하기 위해서였다. 상술했듯 보스니아에는 세르비아인들이 많았고, 이들 대부분은 페르디난트 및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대한 원망이 높은 상태였다.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 민족운동단체인 '젊은 보스니아'의 활동도 격해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황태자 부부가 사라예보를 방문한다는 것은 결코 적절하지 못했다. 방문날인 1914년 6월 28일은 심각성을 더했다. 이날은 황태자 부부의 결혼기념일이기도 했지만 세르비아인들이 치욕으로 생각하는 날이었다. 1389년 세르비아 왕국이 코소보 전투에서 패배해 오스만 제국에게 정복당했었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날, 사실상 적국의 차기 황제가 온다는 소식에 세르비아인들, 특히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급기야 젊은 보스니아를 중심으로 페르디난트 암살 계획이 수립됐다. 세르비아 장교들이 만든 비밀결사 단체인 '검은 손'도 힘을 보태기로 했다. 기실 세르비아라는 국가가 배후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황태자 암살 계획은 사전에 정보가 누설됐다. 오스트리아 빈에 주재하는 세르비아 공사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공동 재무장관을 만나 "황태자 부부가 문제의 그날에 보스니아를 방문하면 도발로 여겨질 것이고 세르비아인 청년이 실탄을 장착한 뒤 황태자의 목숨을 노릴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세르비아 공사는 암살 사건으로 인해 양국 간 전쟁이 발발할 것을 우려했다. 암살 정보를 접한 페르디난트는 매우 태연했다. 그는 일정 변경 없이 그대로 사라예보에 방문하기로 했다. 암살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는 대범한 황태자의 면모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황태자 부부는 6월 28일 오전 사라예보 역에 도착했다. 페르디난트가 부인과 동행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조피는 왕족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동안 오스트리아 황실 내에서 적지 않은 차별을 받았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황태자와 함께 할 수 없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페르디난트는 조피를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이번 기회에 그녀의 정치적 위신을 높여주고 싶었다. (두 사람은 그 흔한 정략결혼이 아닌 연예결혼을 했다.) 이에 따라 구태여 조피를 옆에 둔 것이다. 


황태자 부부는 사라예보에 도착하자마자 보스니아 총독과 함께 자동차에 탑승했다. 길을 따라 시청까지 갈 예정이었다. 주변에는 수많은 군중들이 존재했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치명적인 문제점들이 있었다. 암살 위협을 감지했으면 적절한 대처를 하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조치도 하지 않은 채 암살 위협에 그대로 노출됐다. 우선 황태자 부부가 탑승한 자동차는 훤히 개방된 오픈카였다. 황태자 부부는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모자와 옷을 입고 있었다. 또한 도로를 차단하거나 특수 경호대를 배치하지도 않았다. 평소 페르디난트는 복잡한 경호 절차를 싫어했다고 한다. 이런 비상식적인 상황 하에서 암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황태자 부부 차량이 지나가는 곳마다 암살자들(총 7명)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들은 저마다 리볼버, 수류탄, 자살용 청산가리 등을 소지했고 황태자 부부 차량이 가까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첫 번째 암살 시도는 추무리야 다리에 있는 무하메드 메흐메드바시치가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수류탄도 못 던지고 총은 아예 뽑지도 못했다. 추후 메흐메드바시치는 "부인인 조피를 보는 순간 차마 암살을 결행하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극도의 긴장감 때문에 얼어붙었다는 얘기도 있다. 황태자 부부 차량은 그곳을 지나 두 번째 암살 시도 장소로 나아갔다. 해당 장소에 잠복해 있던 네델코 차브리노비치는 앞선 사람과 달리 기회가 왔을 때 수류탄을 던졌다. 노련했던 황태자 부부 차량 운전사가 일찌감치 수류탄인 것을 알아채고 앞으로 급가속했다. 이로 인해 수류탄은 빗나갔고 뒤따르던 차량 아래에서 폭발했다. (수류탄이 차량을 맞고 튕겨 나갔다거나 황태자가 수류탄을 도로 던졌다는 설도 있다.) 황태자 부부 수행원들이 중경상을 입었지만 황태자 부부는 무사할 수 있었다. 암살 실패를 확인한 차브리노비치는 자살하기 위해 청산가리를 먹고 옆에 있는 강에 뛰어들었다. 황당하게도 청산가리는 이미 유통기한이 지나 효력이 없었고 강은 깊이가 너무 얕아 자살에 실패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황태자 부부에겐 천운이 따라줬다. 나머지 암살자들은 황태자 부부 차량이 너무 빨리 지나가 암살을 시도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시청에 도착한 페르디난트는 사라예보 시장에게 "이 도시는 황태자를 폭탄으로 반기나"라며 화를 냈다. 그의 다음 방문 지역은 국립박물관이었다. 이때 황태자 부부와 동승했던 보스니아 총독은 이 지역은 너무 위험하니 서둘러 군사 훈련 지역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페르디난트도 처음에는 군사 훈련 지역으로 곧장 가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제안을 했다. 폭탄 테러로 중경상을 입은 수행원들을 위문하기 위해 병원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보스니아 총독을 포함한 측근들이 또다시 테러가 발생할 수 있다며 적극 만류했다. 그럼에도 페르디난트는 "이것은 계획에 없는 일정이니 암살자들도 모를 것"이라며 병원 방문을 강행했다. 병원 방향은 국립박물관 방향과는 정반대였다. 만약 병원으로 갔으면 암살이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차량 운전사에게 병원으로 간다는 얘기를 하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일정이 변경된 것을 알지 못했던 운전사는 국립박물관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뒤늦게 길을 잘못 든 것을 확인한 보스니아 총독은 급히 차를 돌리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당시 차에는 후진 기어가 없었고 빠르게 차를 돌리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거리의 폭이 좁았다. 이에 운전사는 매우 천천히 핸들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거의 서있는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하필, 암살자 프린치프가 그 주변 카페에 있었다. 그는 이번 암살 시도가 완전히 실패했다고 판단해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였다. 그런데 자신의 눈앞에 표적인 황태자 부부 차량이 보였다. 프린치프는 자동반사적으로 권총을 빼든 후 황태자 부부 앞으로 뛰쳐나가 두 발의 총탄을 발사했다. 페르디난트는 효용성이 좋은 실크 방탄조끼를 입고 있었지만 총탄은 그의 목을 관통, 경동맥을 끊어버렸다. 부인인 조피는 복부에 관통상을 입었다. (원래 프린치프가 황태자 외에 노렸던 사람은 황후가 아닌 보스니아 총독이었다.) 황태자 부부는 신속히 시청으로 후송됐다. 운전사의 증언에 따르면 페르디난트는 부인을 향해 "죽으면 안 되오. 아이들을 위해 꼭 살아주시오"라며 고통스럽게 중얼거렸다고 한다. 황태자 부부는 시청으로 후송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란히 숨을 거뒀다. 그야말로 극적이고 몇 가지 우연들이 완벽하게 겹쳐져 발생한 '기묘한' 암살 사건이었다. 몇 가지 우연들 중 하나라도 불발됐다면 황태자 부부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마치 정해진 운명을 따라가듯 황태자 부부는 죽음으로 나아갔다. 암살 사건 이후 사라예보에선 세르비아인들을 겨냥한 폭력 사태가 잇따라 발생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세르비아 민족운동단체가 암살을 주도하고 그 배후에 세르비아 정부가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폭력을 부추겼다. 폭력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주요 대도시들에서도 발생했다. 다만 이것은 거대한 비극의 예고편에 불과했다. 곧이어 유럽은 물론 전 세계가 참화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된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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