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사랑 성과주의 사랑
2024-02-09 11:53 ・ 책in사이트


실존한다라는 것은 무엇인가. 실존은 이 세상에 나와 서 있다는 뜻이다.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삶이라는 여정을 이끌어 간다는 것이다. 실존자의 삶은 상황에 영향을 받을지언정 상황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실존자는 삶을 이끌어 갈 때 분명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세상의 선호에 의해 자신의 인생의 과정에 분명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황과 환경에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분명 실존자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주체적인 결정의 순간들이 존재한다.


인간은 집단으로서 경향성이 존재한다. 분명 현실의 상황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는 사랑을 함에 있어서도 그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산업화, 자본주의, 성과주의의 영향으로 현대인은 성과와 보상의 관점에 바라보는 것에 익숙하게 되었다. 어떤 활동을 하고 성과를 이뤄내고 이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는 이 패턴이 나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고 과정에 깊숙하게 관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보상이 없는 경우, 생산물이 남지 않는 경우, 내가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묻는다. 내가 투여한 노력의 양만큼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로 필요할까? 특히 사랑을 할 때 있어서 내가 투여한 시간 돈 자원과 감정만큼 무언가를 꼭 받아야 하는가? 사랑은 성과를 기준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무언가를 보상받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그 자체로 가장 높은 목적이다. 인간의 실존적 고통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진실하고 성숙한 사랑을 통해 상대방의 본질에 다가가게 되고 그 사람의 중심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이 순간에서 우리는 죽음을 인지하고 살아가는 저주에서 해방될 수 있다.


누군가는 자신이 혼자 있어도 전혀 외롭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누구나 인생을 살다 보면 한 번쯤은 세상과 나 사이에 놓인 무한하고 광활하고 무의미한 우주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근원적인 고독감을 마주할 것이다. 혼자임에 외롭다는 그 공허한 감각.


평소에는 이런 고독감을 외면하려고 한다. 술을 통해서, 게임을 통해서, 책을 통해서, 유튜브를 통해서, 운동을 통해서, 일을 통해서 자신의 근원적 고독에 대한 공포를 외면하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영원히 그러할 수는 없다. 언젠가는 이 고독이 내 삶을 직접적으로 덮치는 날이 온다.


이 고독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랑이다. 타인의 존재의 중심과 내 존재의 중심이 연결되는 것이다. 사랑했었던 그 경험. 그때 그 순간만큼은 우리가 분명히 실존하고 같은 감정을 느꼈다! 우리가 살아있었다는 그 감각을 느꼈다! 무의 세상에서도 모든 것을 다 버리더라도 분명 무언가 실존하고 있다고 자신 할 수 있다. 성과에 따르는 보상이 아니라, 그 경험 자체로 인해서 우리는 실존적 존재라는 약점을 지녔음에도 살아갈 수 있다.




그럼 서로의 중심이 연결되는 사랑은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나를 위한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사랑을 하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투자의 영역뿐만 아니라 사랑의 영역, 사람과 관계하는 영역에 있어서도 리스크를 관리하려고 한다. 어떻게 하면 가장 적은 리스크를 앉고 가장 큰 이득을 얻을지 고민한다. 우연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가능한 자신의 통제 하에서 만남을 디자인한다. 그러다 보니 결혼정보회사나 소개팅 앱 같은 서비스들이 성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안전제일주의 사랑은 결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안전한 사랑을 좇는 사람들은 결코 상대의 관점에 세상을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이다. 리스크 계산은 언제나 나의 관점에서 일어난다. 내가 얼마나 사랑을 투여해야 하는지, 만약에 헤어지게 된다면 나는 어떤 아픔을 겪게 되는지 계산을 하며 관계한다. 너의 리스크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을 희상하면서 타인의 리스크를 돌보지 않는다.


나를 위해서 살아가는 인생이 정녕 당연한 것일까? 나를 위해 살아가는 인생이 정말로 행복한 것일까? 행복한 순간을 그려보았을 때 나 혼자만 존재하던가? 그러지 아니할 것이다. 우리는 분명 관계하에서 존재한다. 관계가 존재에 선행한다.


분명 리스크 테이킹을 먼저 한다는 것에는 고통이 따른다. 하지만 고통 자체도 진정한 즐거움에는 함께 포함이 된다. 두꺼운 책을 읽는 과정은 당연히 고통스럽다. 하지만 다 읽고 나면 단순한 쾌락이 아닌 질적으로 다른 즐거움을 얻게 된다. 1천 쪽의 책을 읽는데 1초의 시간이 걸렸다면 과연 나는 즐거울 수 있을까? 즐거움에는 분명 나의 시간과 노력을 먼저 투여해야 하는 리스크를 지는 것이 필요하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먼저 시간을 투여했다가 나중에 쓸모없게 되어버리면 어떻게 될지 걱정되는가? 그렇다고 해서 노력하지 않는 사랑만 하게 되면 그것이 더 큰 리스크로 나중에 다가오지 않겠는가? 


당신은 과연 어떤 사랑을 꿈꾸는가?




Reference.

가장 사적인 관계를 위한 다정한 철학책 - 이충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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