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를 건너는 방법.
2024-01-29 14:20 ・ 적적(笛寂)



노을이 지네

 

땅끝.

 

작두 타는 태양

 

뒤꿈치가 벌어지는 걸 알면서도

 

칼날 아래로 내려 설 수 없다

 

이미 올라선 뒤엔

 

벌어진 발뒤꿈치

 

비산된 햇살

 

그 붉은 피를

 

뒤집어쓰지 않은 사람은 없다

 

푸른 옷깃 바람에 휘날리는

 

애기 무당 내림굿

 

 

또다시 백지에 다다랐습니다. 나는 백지의 네 귀퉁이를 천천히 돌며 끝머리를 손으로 어루만집니다. 그리고 백지로 들어갑니다. 크게 한번 숨을 모아 쉬고 백지 속으로 손을 밀어 넣어 백지의 온도를 체크합니다. 체온보다 낮은 온도를 손으로 떠 올려 심장 근처에 끼얹습니다. 이제 놀라지 않는 심장이 만들어졌습니다.

 

백지 속으로 발끝을 무릎을 그리고 천천히 움직여 백지로 들어갑니다

 

몸이 젖고 마음이 젖고 살갗으로 백지들이 휘감겨 옵니다. 발끝이 닿지 않는 곳까지 나아갑니다. 가만히 백지 깊숙이 온몸을 가라앉혀 머릿결이 다 젖도록 가라앉습니다

 

이제 나는 무엇으로도 젖지 않습니다.

 

백지는 따스해지고 수면 아래로 깊숙이 몸을 말아 가라앉습니다. 위에서 본 백지와 수면 아래의 백지는 다른 세상입니다. 백지 아래 잠겨 가만히 눈을 뜹니다. 먹먹한 귀로 소음은 사라지고 가만히 눈을 뜨면 눈동자는 백지의 경계와 닿아 비산되는 햇살을 펼쳐 보입니다.

참은 숨을 조금씩 덜어냅니다.

 

수면에서 가라앉지 않고 전진합니다. 팔을 내저으며 물보라를 일으킵니다. 내저은 팔의 궤적이 활자가 되고 지나온 물길이 행간이 되고 나는 비로소.

 

백지 끝에 다다랐습니다.

 

다시 갈라진 행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활자들은 잦아들었습니다.

 

파문들만 백지의 모서리마다 저희끼리 모여 키득거립니다.

 

햇살이 눈 부셨던 어느 겨울의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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