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밤의 詩食會
2024-01-27 14:28 ・ 적적(笛寂)

축일

  

​ 정재율

  

옷장 안에서

그러니까 그때

  

​한참 동안 나가질 못해서

나 자신이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옷장 안의 일은 아무도 모르니까

나는 숨 쉬는 법부터 다시 배웠다

  

​벽에

혀가 닿았다

  

​우리 집 개는 내가 없으면 밥을 못 먹는데

겨울 내내 쓴 일기장도 다 숨기지 못했는데

  

​친구들아 내가 만약 죽으면 너희에게 내 만화책을 몽땅 나눠 줄게 그러니 싸우지 마

  

​그런 건 경험해보지 못하고 죽겠지만

  

그때를 떠올리며

나는 옷걸이 대신 빗장뼈를 가지고 놀았다

  

​걸 수 있는 건 다 걸자

  

​다행히 바지는 입은 채로

체면 같은 게 있으니까

  

​어두운 천장을 보는 일도 하나의 슬픔이라서

혀에서 니스 맛이 났다

오래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 상처가 나면 덜 아프대

그러려면 옷장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셔츠에서 셔츠로 코트에서 코트로

나는 보조개가 두 개라서

사랑을 두 배로 받은 아이인데

  

​일곱 살 때 생긴 흉터를 아홉 살 때 생긴 거라고

부모님이 우겼다

  

​우리가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아니?

그래도 밥은 잘 먹잖아요

  

​추문도 없이

  

​언제 들어간 것인지 모를

그러니까 그때

  

​부활절인지도 모르고

옷장 깊은 곳에서 새 양말을 발견했다

  

출처>몸과 마음을 산뜻하게 민음사 2022

  

시식평

아주 작은 물조리개를 손에 쥐고 나는 자꾸 허공에 물을 뿌리는 시늉을 하며 걷고 있었지. 새로 생긴 수제 어묵 가게에는 보석처럼 윤이 나는 어묵들이 금방 잡혀 아직 비늘을 반짝이고 있었어. 나는 어묵을 만드는 사내의 손목과 반죽을 절묘하게 펴서 기름에 튀겨내는 모습을 바라다보며 취해갔어. 사람들은 줄지어 가게를 나가며 팔랑거렸어. 

사실 지금 생각하면 그 어묵 맛을 지금은 기억나지 않아. 

그리고 그날 허공에다 물을 뿌리는 시늉을 하며 손에 들고 있던 하늘색 물조리개를 어딘가에서 잃어버렸어 한 손에 어묵 꼬치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어. 어묵 꼬치에서 물 비린내가 났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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