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농정담] 한동훈의 인생은 왜 꼬일까?
2024-02-07 04:05 ・ QR News



오늘 뉴스에 보니 한동훈이 총선 후 자신의 인생이 꼬일 것이라는 예언을 했단다. (링크: https://v.daum.net/v/20240207104352554) 기사 내용을 인용해 본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7일 차기 대권 출마 여부와 관련해 "이기든 지든 4월 10일 이후에 제 인생이 꼬이지 않겠나"라고 밝혔다. 한 위원장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총선 결과가 만족할 만한 수준이 되고 기회가 되면 차기 대선에 나올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그는 "사실 인생 자체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스트라이크존을 넓혀놔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 위원장은 "국민의힘이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좁은 의미에서 정치를 안 해본 사람을 갑자기 당대표로 불러올린 것"이라며 "그만큼 이번 총선의 승리가 이 나라와 동료시민들을 위해 필요하고 중요하다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제가 죽을 길인 걸 알면서 나왔다"며 "이번 총선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목표를 달성 못 한다면 저는 당연히 비대위원장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했다. 한 위원장은 "그만큼 이번 4월 선거, 목련 필 때 선거에 집중할 것이고 그 외의 것은 정말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 외의 것을 생각한다면 승리에 방해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 이후에 어떻게 될지 그림은 제 머릿속에 없다"고 강조했다.”    


점술을 공부한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 가운데 ‘구업’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불교의 교리에 나오는 개념으로 삼업 가운데 하나다. 삼업은 신업, 구업, 의업을 말한다. 그리고 이는 선업, 악업, 무기업과 연결된다. 이 삼업은 선업과 불선업과 연관된다. 불교의 교리는 대단히 복잡하지만, 기본적인 의미는 간단하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몸과 입과 생각으로 선업과 악업을 쌓게 된다는 말이다. 선업을 쌓으면 복을 받고 악업을 쌓으며 벌을 받는 이치와 이어진다. 그래서 말과 행동과 생각을 조심하라는 경고를 위해 이런 교리를 만든 것이다.    


원래 이 삼업은 불교 경전 <천수경>에 나오는 것인데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종교와 무관하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개념이 되었다. 이 삼업 가운데 가장 나쁜 것이 구업이다. 그리고 구업에는 다시 악구(惡口), 망어(妄語), 기어(綺語), 양설(兩舌)의 4가지가 있다. 악구는 남에게 험담하여 그 상대방이 분노하게 만드는 것이다. 망어는 거짓말이다. 시쳇말로 한다면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것이다. 기어는 유교에서 나쁘게 말하는 교언영색을 의미한다. 양설은 이간질하는 말이다.    


그동안 한동훈이 보여준 언행을 보면 그가 얼마나 많은 구업을 쌓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국회의원을 상대로 분노 유발하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해대고, 비대위원장이 되고 나서는 김여사가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내가 언제 그랬냐면서 망어도 마구 해대고 있다. 그리고 메가시티와 같은 말도 안 되는 헛된 공약을 내세우면서 기어를 남발하고 있고, 스타벅스 설화와 같이 사회 계층의 갈라 치기 하는 말을 마구 뱉고 있다. 그가 내뱉은 말들로 쌓은 업의 산이 너무 높다. 말 그대로 구업여산(口業如山)의 지경에 이른 것이다.     


과연 한동훈이 뭘 믿고 저리 함부로 구업을 쌓는 것인지 그 속을 알 수 없어 궁금하던 차에 오늘 한동훈이 진실을 말해 버려다. 자기는 어차피 망할 판에, 더 정확히 말해서 죽을 길인 것을 알면서 나와서 그런 구업을 쌓고 있다고 고백한 것이다. 그가 자주 언급하는 목련의 만개 시기가 보통 4월 12일 정도다. 그런데 목련도 종류에 따라 개화 시기가 조금 다르다. 백목련은 3월 말에 개화하고 자목련은 4월 중순에 핀다. 그렇다면 한동훈은 스스로가 자목련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목련은 필 때는 아름답지만 일단 지고 나면 그 추레함이 안쓰러울 정도다. 총선이 끝나고 한동훈 자신이 그런 목련처럼 될 것임을 스스로 알고 있다는 말인가?    


목련에는 다른 꽃과는 매우 다른 특징이 있다. 바로 꽃이 북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 꽃들은 햇빛을 더 많이 받으려고 남쪽을 향해 피는데 목련만은 한사코 북쪽을 향한다. 이런 특성을 보고 옛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전설을 만들어 냈다.    


아주 오랜 옛날 옥황상제에게 매우 예쁜 딸이 있었다. 많은 남자가 청혼하였지만, 한사코 거부했다. 이미 마음속에 북쪽 바다의 해신을 사모했던 것이다. 그러나 옥황상제는 성질 더러운 그 해신에게 딸을 보낼 맘이 조금도 없었다. 옥황상제를 설득하다 못한 공주는 결국 가출해서 홀몸으로 북해신을 찾아갔는데 그는 이미 혼인을 한 유부남이었다. 그 먼 길을 찾아와서 자기가 유부남을 짝사랑한 것을 알게 된 공주는 자살하고 말았다. 그런데 북해신은 그 사실을 알고 나서 자기 아내를 독살하고 그 공주와 함께 묻어주었다. 그러고 나서 북해신은 그 이후 홀아비로 살았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옥황상제가 죽은 두 여자를 위해 무덤에 나무를 심었는데 그 나무가 바로 목련이다. 그런데 북해신을 사모한 두 여인의 영혼은 죽어서도 북해신만 바라보느라고 북쪽을 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동훈이 이 전설을 알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가 목련을 자꾸 언급하더니 오늘에 와서는 인생이 꼬인다는 둥, 죽을 길을 간다는 둥 하는 것을 보니 예사롭지 않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구업을 쌓아서 지옥에 간다는 인과율을 말하지만, 기독교에서는 조금 다르게 해석한다. 기독교에는 인과율이 아닌 예정론이 있다. 곧 내가 선행을 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천국에 가도록 예정된 사람이기에 이 세상에서 선행을 하며 살게 된다는 말이다. 사실 이런 교리는 가톨릭에서는 좋아하지 않는다. 이 논리가 맞는다면, 곧 천국에 갈 사람이 예정되어 있다면 굳이 선행을 하라고 강요할 필요가 없고 이 세상에서 지은 죄를 틈틈이 고백하고 용서받는 고해성사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예정론은 특히 개신교가 강력히 주장했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는 가톨릭 사제였음에도 종교개혁 이후 고해성사를 강력하게 비난하게 된 것이다. 종교개혁 이후 이 구원의 예정론을 놓고 개신교와 가톨릭은 죽자고 싸웠다. 그러다가 결론이 난 것은 20세기말에 들어와서다. 1999년 가톨릭과 세계개혁교회연맹은 Joint Declaration on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이라는 문서를 발표하였다. 영어는 하나인데 한국은 가톨릭과 개신교가 따로 번역한다. 마치 God을 ‘하느님’과 ‘하나님’으로 따로 번역하듯이 말이다. 그래서 가톨릭은 <의화교리에 관한 공동선언문>으로 번역하는데 개신교는 교파에 따라 <의화, 또는 칭의, 또는 의인 교리 공동선언문>으로 번역한다. 세상에 이런 식으로 번역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성경에 나오는 주요 개념도 교파에 따라 맘대로 번역하고 자기가 옳고 남은 틀렸다고 주장한다.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지만 어쩌겠는가? 기독교마저 한국인의 특징인 분파주의, 파벌주의, 독선을 더욱 조장하는 나라인 것을.    


각설하고...    


이런 의화, 칭의, 의인 교리 공동 선언에서 내린 결론은 인간의 선행과 무관하게 인간은 오로지 신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결국 500년 가까운 교리 논쟁에서 개신교의 예정론이 승리를 거둔 것이다. 물론 가톨릭 측은 무조건 항복하는 것이 억울해서 가톨릭 교리의 내용을 부차적으로 달았지만, 핵심은 변함없다. 인간의 선행은 구원의 전제 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요즘 한국의 교회에서 미사 예배 열심히 나오고 헌금 열심히 하면 전국 간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런데도 명색이 성직자인 자들은 여전히 그런 구업을 쌓고 있다. 지옥이 무섭지 않은 모양이다. 심지어 예수를 믿지 않아도 천국을 갈 수도 있다. 천국 가는 것은 전적으로 신의 은총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는 가톨릭교회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문서에 나와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    


한동훈이 열심히 구업을 쌓고 심지어 자기는 죽을 길을 간다는 둥, 인생이 꼬일 것이라는 둥 말을 함부로 하는 이유는 엄살을 떠는 것이 아니라 그런 길이 이미 예정되어 있기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나쁜 말을 해서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벌을 받도록 이미 예정되어 있기에 나쁜 말을 하는 것이다. 원인과 결과를 이런 식으로 구분하여 보는 것은 기성 종교만이 아니라 한국 전통의 점술에서도 마찬가지다. 흔히 한국의 토속 신앙에서는 현생에서 어렵게 사는 이유가 전생에 지은 죗값을 치르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죗값을 치르는 것이 힘들어서 피하거나 오히려 대항하면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인과율적인 해석이고 좀 더 종교적인 해석으로는 이미 내생에 더 큰 고통을 당할 사람이기에 그렇게 죗값을 치를 생각은 안 하고 더 큰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는 말하자면 ‘미신’이니 믿거나 말거나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불교나 기독교와 같은 기성 종교에서도 인과율과 예정론을 이야기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님들은 종교와 무관하게 구업을 쌓는 것을 매우 경계했다. 그런데 한동훈은 정치판에 등장하기 오래전부터 서슴지 않고 구업을 쌓았다. 죽고 싶어서? 아니다. 종교적으로 보면 자기의 운명을 알고 있기에 그리 한 것일 뿐이다. 운명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한동훈이, 이 어려운 시기, 곧 국민의힘이 완패당하고 윤 대통령이 탄핵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시기에, 그것도 ‘김건희 리스크’를 막고 ‘검찰 사단’을 심으라는 지극히 사적인 지상명령을 받들고 나와서 결국 대패한 총선 결과를 홀로 책임지는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뻔한데도 나와서 이리 구업만 쌓고 있는 것이 측은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유부남을 사랑하다 자살한 공주와 같은 운명을 피할 길이 없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 아닌가? 더구나 다름 아닌 한동훈 자신이 그런 운명을 예감했다면 말이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 운명 아닌가? 인간이 아무리 재주를 피워도 하늘의 운행을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운명을 알고 최선을 다해 선업을 쌓자고 노력한다면 피흉추길이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만 그런 선한 결단을 하고 실천하는 것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도 건드릴 수 없는 운명의 세 여신 모이라이(Μοῖραι), 곧 클로토, 라케시스, 아트로포스가 잣는 실타래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는 말인데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운명은 그저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한동훈의 운명의 실이 어찌 마감될지 지켜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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