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밤의 詩食會
2024-02-04 12:29 ・ 적적(笛寂)


순서

  

  

정리움

  

죽음에 순서가 없다는 말은 죽기 전의 일이다 화장터에는 순서를 기다리는 줄이 길었고 번호표를 받고 기다렸다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예를 올렸다 원하지 않았지만 앞선 사람의 유골이 나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시신이 시뻘건 불구덩이로 들어갈 때 잠시 잊었던 눈물이 낮설었다 뼛가루를 받아 안고 봉안당으로 가는 길은 충분히 피곤했다 누구도 주저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집에 돌아와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거실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아무도 불을 밝히지 않았다 적막이 숨소리를 집어삼켰다

  

갑자기 맹렬한 허기를 느꼈다 불도 켜지 않은 식탁에 앉아 꾸역꾸역 밥을 먹기 시작했다 동생도 나와 말없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밥 삼키는 소리에 식구들이 모여들었다 쩝쩝 요란하게 밥을 먹었다 불도 켜지 않고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그렇게 우리와 마지막 식사를 했다


출처>나는 잘 있습니다 시인동네 시인선 2024.01 


시식평

  

때때로 시를 시로 답해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밤고구마 껍질을 벗겨내고 갑자기 냉장실 안에 쪼그리고 앉아 냉장고를 뒤적여 오래전 어머니께서 두고 가신 갓김치를 찾아내는 일처럼 깊습니다. 시어 꼬부라진 갓을 몇 줄기 잘라내어 접시에 담고 다시 식탁 위에 앉아 기어코 만찬을 시작하는 기분.

  

쉼표와 마침표가 없어서 더 슬픈 시가 있습니다

문득 떠오른 시를 다시 찾아봅니다.

  

춥고 서러울 때. 꿀 병에 담긴 벌집 조각을 입 안에 넣었을 때. 달콤하고 따듯했어. 꿀이 다 녹고 벌집도 녹았다. 아무것도 남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 녹아도 더는 녹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이 있는 거야. 하얗고 끈끈한 껌 같은 것이. 그런 밀랍으로 만든 문. 네가 가진 문은 그런 것 같다.
[발췌] 안미옥 / 여름잠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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