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말을 거는 달
2024-01-29 00:07 ・ 적적(笛寂)

밤 산책마다 달을 찾아봅니다. 여러 군데의 골목과 목을 젖히거나 기울여 보며 달을 기대합니다. 근래 들어 밤에 달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겨울 아침이 좋은 건. 밤의 안내데스크를 지키고 있는 달을 만날 수 있는 일입니다.

 

꿈도 꾸지 않은 잠을 자고 일어나 전날 밤을 지켜 준 달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일은..

 

누구도 고개 들어 달을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루는 아주 사소한 일들로부터 시작됩니다. 너무나 사소해서 일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미안할 정도의 일들로부터 말이죠.

가령, 알람이 울리기 전 눈을 가만히 감고 오늘 내게 밀려들 슬픔에게 잃어버린 물조리개로 놀라지 않도록 물을 주는 일 그리고 촉촉해진 눈꺼풀이 쌍떡잎식물처럼 양쪽으로 벌어지며 유통기한이 다가오는 곰보빵처럼 빡빡한 어둠을 꾸역꾸역 삼키는 일부터.

동그랗게 말려 추첨을 기다리는 공을 꺼내듯이 팔을 뻗어 양말통을 휘저어 오늘 당첨된 양말을 꺼내 신는 일.

 

오늘 일용할 물을 커피포트에 가득 올려 산책을 다녀올 동안 끓도록 전원을 켜둡니다. 물론 산책을 다녀온 뒤 다시 한번 끓도록 합니다. 조금 식어있을 물의 온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추운 겨울 한 번쯤 큰소리로 사라지는 물의 그림자를 보고 싶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늘 빨래를 삶습니다. 커다란 들통에 빨래들을 담아 가루비누를 넣고 물이 끓어오르면 부엌 타일에 쏟아지던 햇살을 배경으로 끓어오르는 수증기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릅니다. 넘치기 전에 불을 줄이라고 신신당부를 하신 어머니께서 화들짝 놀라 달려와 불을 끌 때까지 그 아지랑이를 바라보느라 불을 한 번도 제대로 껐던 적이 없었지만, 어머니는 늘 그 일을 제게 시키셨습니다. 그 아지랑이를 보고 있는 행복한 순간을 어머니는 알고 계셨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등짝을 맞을 때마다 아니구나 그런건 알 턱이 없겠지 라고 실망하기도 했었지만요.

 

달은 출입구까지 나와 태양이 출근하기를 기다립니다. 창백한 달의 뺨은 책상을 닦아내고 던져놓은 물티슈처럼 습기를 다 날리고 말라 있습니다. 물론 습기를 아무리 다 날렸어도 바스라 지거나 하진 않습니다.

 

오늘은 제법 맑은 날일 것 같습니다. 이렇게 햇살이 맑고 투명한 날은 손끝이 더 시리고 발걸음은 다른 날보다 빨라집니다.

 

아직 출근도 하지 않았는데 퇴근을 하고 싶습니다.

 

월요일은, 아니 모든 요일이 다 그랬던 것 같습니다.

공유하기
댓글 2
관련 추천